Monday, February 29, 2016

개성공단 사태로 본 대통령 리더십 (Presidential Leadership Viewed in the Kaesong Industrial Complex Crisis)

개성공단 사태로 본 대통령 리더십
 

 死即生 결기를 보여야 무시당하지 않는다

| 김진. 중앙일보 정치담당 논설위원

지난 2 10일 박근혜 대통령 정부는 개성공단을 사실상 폐쇄했다. 짧게 보면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대한 조치다. 하지만 길게는 대한민국의 정신사(精神史)에 하나의 획을 긋는 사건이다.

인간이나 국가나 사즉생(死即生)의 결기가 없으면 끌려 다닌다. 주변 세력에 무시당한다. 강대국에 둘러싸인 보통국가는 더욱 그러하다.
  
   한 국가의 자존(自尊)은 위기 대처에서 드러난다. 남한에는 북한이라는 위협이 결정적 시험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치는 동안 남한은 무시당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미국·일본·중국·러시아에 한국은 용기 없는 나라로 비쳐진 것이다.

지도자가 자신의 노벨 평화상을 위해 협박세력에 45000만달러를 쥐여주고, 그런 부끄러운 거래판에서 실세들이 떡고물을 챙기고, 정보기관장이 적국의 수장에게 굽신거리고, 대통령이 굴욕적으로 영토선을 양보하는 그런 나라를 어느 강대국이 두려워하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중국과 일본은 한국을 눌렀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중국에 조선은 조공(朝貢)을 바쳤고, 일본에 조선은 식민지였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 됐다지만 안보의 결기가 없으니 한국은 이들의 간담(肝膽)을 잡지 못하고 있다. 그런 상황이니 중국은 툭하면 한국을 협박한다. 사드를 배치하면 “대가를 치를 것”이란다. 위안부 문제를 끝내자면서도 일본 관리는 할머니들에게 직접 사죄하지 않는다. 한국을 가볍게 보는 것이다.
  
   한민족의 결기가 원래부터 이렇진 않았다.
구한말 국가 경영을 잘못해 나라를 빼앗겼지만 적잖은 지사가 목숨을 걸고 정기(精氣)를 지켰다. 물론 망국의 한쪽에는 부끄러운 풍경이 있었다. 왕족과 고위직 양반 76명이 합방에 공을 세웠다는 이유로 일제로부터 작위와 은사금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다른 쪽에는 목숨과 재산을 던지며 항거의 길을 간 이들이 있었다.

서울의 우당 이회영 일가, 강화도와 진천의 양명학자들, 경상도 안동의 이상룡·김대락 일가들이 독립운동을 위해 망명을 떠났다. 민영환이나 매천 황현처럼 의분을 참지 못해 자결한 이들도 있다. 그리고 수많은 이가 의병에 나서기도 했다.
  
   구성원이 결기를 보일 때 공동체는 자존을 지킨다. 3·1운동 같은 항거와 안중근·윤봉길·이봉창 같은 의거가 있어 조선의 정신은 마지노선을 지켰다. 중국과 일본은 이를 지켜보았다. 윤봉길 의사가 1932년 상하이에서 폭탄 투척을 결행하자 중국의 장제스는 “중국의 100만 대군도 하지 못할 일을 해냈다”고 했다. 장제스는 훗날 헌시(獻詩)를 증정하기도 했다.
  


   1948년 건국 이후 비록 나라는 작았지만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은 결기로 국가의 자존심을 지켰다. 6·25전쟁 중 미국과 중국이 서둘러 휴전하려 하자 이승만 대통령은 반공포로를 일방적으로 석방하여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한민족의 운명을 당신들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는 의지였다. 이 대통령은 전쟁 중에도 영해주권(이승만 라인)을 선포하여 독도를 한국 해역에 포함시켰다. 선을 넘는 일본 어선은 나포하라고 대통령은 명령했다.
  
   북한 도발에 박정희 정권은 단호하게 응징했다. 1973년 비무장지대에서 북한군이 사격을 가했다. 백골부대 3사단장 박정인 장군은 포 사격으로 북한군 초소를 부쉈다. 북한은 더이상 도발하지 않았다. 1976년 북한군이 판문점에서 도끼만행을 저질렀다. 박정희 대통령은 미군과 함께 미루나무 절단이라는 응징작전을 폈다. 북한이 공격하면 북한땅 연백평야까지 진군한다는 각오였다. 김일성은 처음으로 유엔군 사령관에게 사과했다.
  
   남한이 군사적으로 제대로 응징한 것은 사실상 이것이 마지막이다.

북한이 비수(匕首)를 들이대도 남한의 유약한 대통령들은 보복하지 못했다. 김대중·노무현 진보정권뿐만이 아니다. 보수정권도 자긍(自矜)의 수준을 채우지 못했다.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북한 핵시설에 대한 폭격을 추진했지만 김영삼 대통령은 아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때 싹을 자르지 못해 오늘날 이 죽음의 나무는 남한에 검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북한 잠수함이 천안함을 폭침해도, 섬마을이 북한의 포격에 불타도, 이명박 정권은 응징의 결기를 보이지 못했다.

한 대에 1000억원이나 하는 F-15K를 국민이 43대나 사 주었는데도 미사일 한 방 쏘지 못했다. 사실 군사적 경략(經略)이 있는 지도자라면 북한의 연평도 포격 같은 것은 ‘하늘이 내려준 기회’로 삼아야 했다. 반격은 물론이거니와 차제에 천안함에 대한 보복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한이 강력하게 반격해도 북한이 확전할 가능성은 낮았다는 게 군사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아니 설사 국지전이 벌어져도 이를 감수하고 북한 정권에 충격을 주어야겠다는 결심을 하는 게 정상이다. 그런 전략이 북한의 위협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단초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안보의 충격이 발생하면 북한은 남한을 두려워하게 된다. 남한을 보는 북한의 시각이 달라지면 핵개발을 포함한 북한의 국가 노선이 변할 수 있다. 미국은 물론 중국이나 일본이라면 당연히 그런 충격 전술을 썼을 것이다.
  
   대통령을 위시해서 당시 청와대 지하벙커에 있던 수뇌부의 상당수가 군대를 가지 않았다. 그러니 이런 경략이 나올 리가 없다. 천금 같은 기회를 놓치고서도 이명박 정권의 담당자들은 폭격을 하지 못한 책임을 군부에 넘기고 있다. 물론 폭격을 적극적으로 건의하지 못한 군부의 책임이 크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군 통수권자는 대통령이다. 대통령과 안보보좌관들이 사태를 지휘하지 못해 놓고는 무슨 할 말이 있는가. 천안함과 연평도의 실패를 보고 중국과 일본이 한국의 수뇌부를 어떻게 생각할까.
  
   안보에 있어 이명박 정권은 나름대로 할 일을 하기도 했다. 금강산 관광을 닫았고 5·24조치라는 강경한 대북제재를 감행했다. 아덴만 작전으로 해적을 제압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런 것은 당연한 필요조건이지 충분한 게 아니다. 남한이 치러야 할 희생이 별로 크지 않은 것이다. 한 국가가 엄청난 희생이나 위험을 무릅쓰면서 안보의 결기를 보일 때만 적국이 두려워하고 주변국이 감동한다.
  


   1981 6월 이스라엘은 이라크의 핵개발 원자로를 폭격했다. 원자로 주변에는 대공 미사일과 요격기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이스라엘은 그렇다고 대충 멀리서 미사일이나 쏘는 식으로 하진 않았다. 폭격기들은 1000여㎞를 날아갔다. 돌아올 때 필요한 기름을 아끼려 저속으로 비행했다. 조종사들은 원자로를 눈으로 보고 폭탄을 원자로 벽에 때렸다. 폭탄들은 명중했고 원자로는 사라졌다. 이스라엘은 2007년엔 시리아 원자로도 부쉈다.
  
   1981년이라면 이스라엘이 핵무기를 가지기 전이다. 여차하면 5차 중동전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은 해냈다. 조종사도, 국가도 목숨을 거니까 아랍이, 세계가 이스라엘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최근 이란은 핵개발을 포기했다. 국제사회의 제재를 견디기도 어려웠지만 근본적으로는 이스라엘의 폭격을 두려워한 것이다.
  
   국가가 안보의 결기를 보이려면 야당과 반대세력이 도와야 한다. 이스라엘 정권이 이라크와 시리아의 원자로를 폭격했다고 야당이 “국가를 전쟁의 위험에 빠뜨렸다”고 반대한 일은 없다. 그런데 한국의 야당은 다르다. 천안함을 폭침한 북한 어뢰가 발견됐는데도 2년 반이나 북한의 소행을 인정하지 않았다. 한국의 야당이 그러하니 중국이 북한을 규탄하는 결의안에 찬성하겠는가.
  
   국가가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국민도 결의를 보여야 한다. 대북전단을 살포하는 사람들에게 포탄을 퍼붓겠다고 북한이 위협했다. 휴전선 일대에는 20여개의 면()이 있다. 만약 면장들이 모여 “우리끼리 순서를 정하자. 순서대로 매주 마을에 와서 전단을 뿌리라고 하자”고 했으면 어떨까. 중국이, 일본이 아니 무엇보다 북한이 남한을 다시 봤을 것이다. 그러면 지뢰 도발 따위는 하지 못했을 것이다.
  
   개성공단 폐쇄는 북한에 상당한 충격을 줄 것이다. 1년에 1억달러의 현금이 막히는 것이다. 북한 정권에 더 곤란한 것은 개성인구 20만의 생계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이들은 정권에 불안요인이 될 수 있다. 그런데 김정은에게 정말로 두려운 것은 다른 것일 게다.


그것은 남한 박근혜 정권의 결기다. 이제 남북한에는 걸친 것이 없다. 북한이 계속 도발하면 남한은 더 큰 결심을 할 수 있다. 어쩌면 한반도에 진정한 변화의 순간이 오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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