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September 20, 2015

롯데가 일본기업이라는 사람들 (People who call Lotte is a Japanese company)

롯데가 일본기업이라는 사람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신격호 회장을 만난 것은 롯데호텔 34층 그의 집무실에서다.
세간에 화제가 되고 있는 그곳이다.
22년 전이니 신 회장 나이 71세 때다.
그는 소문과 다르지 않았다.
빈틈없고 논리적이었다.

그런 그가 모국 투자 초기의 일화를 소개하다가 창 밖을 내다보더니 말을 멈췄다.
그리곤 안타까운 표정으로 이런 말을 했다.
“그 사람한테는 못할 짓을 했지….

신 회장이 국내 투자에 나선 것은 1967년이다.
제과로 시작했지만 기간산업을 일으키고 싶었다고 했다.
마침 생각지도 않게 청와대가 제철사업을 해보라고 제안해왔다.
하지만 제철은 모르는 분야였다.
수소문 끝에 찾아낸 사람이 재일동포 김철우 박사다.
제철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던 도쿄대 교수다.
신 회장이 못할 짓을 했다는 바로 ‘그 사람’이다.

신 회장은 그와 함께 종합제철소 건설을 위한 기본기술 계획과 타당성 조사를 서둘렀다.
당시로는 거액인 3000만엔과 일본의 전문인력 30여명을 투입했다.
8개월 만에 마무리한 보고서를 청와대에 제출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박태준 당시 대한중석 사장이 나타났다.
제철은 정부가 맡기로 했다는 것이다.
신 회장은 군소리 없이 모든 걸 넘겼다.
자료는 물론 사람까지 말이다.
김 박사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김 박사는 포항제철 1기 고로 건설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그러나 제철소가 완공되던 1973년 간첩죄로 구속돼 66개월간 고초를 당해야 했다.
가족을 만나러 일본에서 잠시 북한에 갔던 사실이 뒤늦게 문제가 된 것이다.
김 박사는 재심 끝에 2012년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신 회장은 제철산업의 기틀을 닦은 그에게 고통을 줬다는 자책감에 무척 괴로워했다.

산업화에 결정적 역할을 한 포스코다.
그 포스코의 1기 고로 건설 계획을 처음 작성한 사람이
신격호라는 사실을 국민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신 회장이라고 과자나 만들고 싶었겠는가.
자동차사업도 추진했지만 정부의 반대로 무산됐다.
그 뒤론 한눈 팔지 않고 관광업과 유통업에 주력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유통이나 관광도
농사나 수출 못지않게 나라에 필요한 사업이라는 점을 누차 강조했다.

롯데는 이제 80여개 계열사를 거느린 거대기업으로 성장해
35만명을 직·간접 고용하고 있다.
벌어들인 돈은 다시 국내에 투자하고 있다.
이런 기업을 어떻게 일본 기업으로 매도하는지.

자기 돈이라고 마음대로 들여올 수 있던 것도 아니었다.
일본도 외화 부족으로 해외 송금 한도를 500달러로 묶어놓아
동포들은 귀국할 때마다 몰래 돈을 숨겨 들여오던 시절이다.
한국은 게다가 외국인 지분 한도를 49%로 묶어놓지 않았던가.
일본인 시게미쓰와 한국인 신격호의 합작이라는 기형적 구조가 불가피했던 이유다.
그런데도 언론은 이를 처음 알았다는 듯 떠버리고,
특혜 기업이라며 흔들어 댄다.
자신의 무지함을 자랑이라도 하듯 말이다.

신 회장만이 아니다.
소위 ‘자이니치(在日)’로 불리는 재일 기업인이
조국 산업화에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을 쏟았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재일동포의 국내 투자액이
10억달러를 넘어선 것은 1978년이다.
그때까지 재일동포를 제외한 외국인의 총 투자 규모는 9억달러에 불과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자금원이 재일 기업인들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셈이다.

방림방적을 세워 면방을 일으킨 서갑호,
구로공단 건설과 가발의 수출산업화 아이디어를 제공한 코오롱 창업자 이원만,
경남모직과 한일합섬을 세운 김한수,
기아산업을 설립한 김철호,
신한은행을 키워온 이희건과 오사카 기업인들….
모두 차별을 이겨내며 맨주먹으로 돈을 벌어 조국 산업화를 도운 재일 기업인이다.

롯데의 문제는 가족의 문제이고, 시스템의 문제일 뿐이다.

신동빈 롯데 회장은 엊그제 기자회견에서 “롯데는 신격호 총괄회장이 일본에서 번 돈을 고국에 투자해

대부분을 한국에 재투자한 한국 기업”이라며 눈물을 글썽였다고 한다.

광복 70주년이다.

일본에서 기업을 일으켜 조국을 살찌운 기업인들에게 박수는커녕

일본 기업이라는 멍에를 씌워서야 쓰겠는가.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한국경제신문. 김정호 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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