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李秉喆의 재미와 흥미
趙甲濟
1983년 12월3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李秉喆 삼성그룹
회장은 조선일보 논설고문 선우휘씨와 오랜 시간 대담을 하였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을 확대하고 있을 때였다. 월간조선 기자이던 나는 이 대담을 정리하여 1984년 1월호에 실었다. 3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읽어보니 李 회장의 先見力과 애국심,
그리고 창조적 기업가 정신에 새삼 감탄한다.
그는 자신이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은 재미 삼아
한 일이라고 말하였다.
"가정에 돈이 많아 돈을 꼭 벌어야 할 사정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놀기는 심심하고 갑갑하고. 그래서 사업을 하였는데, 이게 재미 있더란
말입니다. 재미,
그래서 재미 있게 살기 위하여 사업을 한 셈입니다."
그는 "한 십년쯤 사업을 하고 나니까 해방이 되어 이제는 나라를 위하여 일해야겠다는 심정으로 사업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또 7~8년이 지나니 이제는 나라에도 도움이 되고 인류에도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뭐 돈에 욕심이 있다, 삼성을 키워야겠다,
그런 욕심이 없어졌어요. 나라 전체를 위하여 도움이 된다면 微力(미력)이나마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현재 갖고 있어요. 제가 회의 때 강조하는 게 있습니다. 삼성이 중요하냐, 국가가 중요하냐. 국가가 중요하다. 국가가 부흥하면
삼성 같은 건 망해도 또 생길 수 있다. 국가가 망하면 삼성은 영원히 없어진다. 그러니 국가가 우선이다. 그걸 투철하게 생각합니다."
인터뷰 당시 73세이던 李秉喆 회장은 "새로 사업을 시작할 때가 가장 신이 나고 재미 있다"고 했다.
"뭘 새로 창조한다는 것이 그렇게 재미 있을 수가 없어요. 그런 건 저의 본능인 것 같습니다. 지금 시작한 반도체처럼 처음 사업을 할때는 저녁에도
그 생각, 자고 일어나서도 그 생각, 뭣이 부족한 것이 없나,
있으면 보강하고 물어보고, 회의를 해서 안되는 게 있느냐 또 알아보고 일을
맡기고, 계속 뒤를 체크하면서 전체를 전망해가면서 일을 하지요. 그런데 만들어놓은 회사에서 뭐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는 보고가 들어오면
짜증이 납니다. "
李 회장은 "나는 똑 같은 일을 하라고 하면 정말 싫어!"라고 했다. 그는 "몰입하던 새 사업이
정상적으로 돌아간다는 보고를 받으면 그 < FONT style="FONT-SIZE: 14pt" color=blue
face=Batang>뒤론 관심이 사라지고 또 새로운 사업을 구상한다"고도 했다. 새로움에 대한
흥미, 일을 재미로 하는 것은
천재들의 공통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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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6월27일 있었던 李秉喆과 朴正熙의 만남은 한국 현대사를
바꾼 역사적 인연, 즉 군인과 기업인의 협력을 상징한다.
삼성물산 사장 李秉喆은 회고록에 1961년 6월27일 군사정부의 실력자 朴正熙 부의장과 나눈 대화를
상세히 기록해 두었다.
그는 부정 축재자 11명의 처벌 문제에 대한 나의 의견을 물었다. 나는 부정 축재 제1호로 지목되고 있는데 어디서부터 말문을 열 것인가,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朴 부의장은 “어떤 이야기를 해도 좋으니 기탄없이 말해 주십시오”라고
재촉했다. 어느 정도 마음이 가라앉았다. 소신을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부정축재자로 지칭되는 기업인에게는
사실 아무 죄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朴 부의장은 뜻밖인 듯 일순 표정이 굳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계속했다.
“나의 경우만 하더라도 탈세를 했다고
부정 축재자로 지목되었습니다.
그러나 현행 세법은 수익을 훨씬 넘는 세금을 징수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는 전시 비상사태하의 稅制 그대로입니다. 이런 세법하에서 세율 그대로 세금을 납부한 기업은 아마 도산을 면치
못했을 겁니다. 만일 도산을 모면한 기업이 있다면 그것은 기적입니다.”
朴 부의장은 가끔씩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하는 태도를 보여 주었다.
“액수로 보아 1위에서 11위 안에 드는 사람만이
지금 부정 축재자로 구속되어 있지만 12위 이하의 기업인도 수천, 수만 명이 있습니다. 사실은 그 사람들도 똑같은 조건하에서 기업을 운영해 왔습니다.
그들도 모두 11위 이내로 들려고 했으나 역량이나 노력이 부족했거나 혹은
기회가 없어서
11위 이내로 들지 못했을 뿐이고 결코 사양한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어떤 선을 그어서 罪의 유무를 가려서는 안 될 줄 압니다.
사업가라면 누구나 이윤을 올려 기업을
확장해 나가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말하자면
기업을 잘 운영하여 그것을 키워 온 사람은 부정 축재자로 처벌 대상이 되고 원조금이나 은행 융자를 배정받아서 그것을 낭비한 사람에게는 죄가
없다고 한다면 기업의 자유경쟁이라는 원칙에도 어긋납니다. 부정 축재자 처벌에 어떠한 정치적 의미가
있는지 알 길이 없지만 어디까지나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의 처지에서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朴 부의장은 “그렇다면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기업하는 사람의 본분은 많은 사업을
일으켜 많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면서 그 生計를 보장해 주는 한편, 세금을 납부하여 그 예산으로 국토방위는 물론이고 정부 운용,
국민 교육, 도로 항만 시설 등 국가 운영을 뒷받침하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른바 부정 축재자를 처벌한다면 그 결과는 경제 위축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당장 세수가 줄어 국가 운영이 타격을 받을 것입니다. 오히려 경제인들에게
경제 건설의 一翼을 담당하게 하는 것이 국가에 이익이 될 줄 압니다.”
朴 부의장은 한동안 내 말을 감동
깊게 듣는 것 같았으나 그렇게 되면 국민들이 납득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국가의 大本에 필요하다면 國民을 납득시키는 것이 정치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한동안 실내는 침묵에 빠졌다. 잠시 후 미소를 띤 朴
부의장은 다시 한 번 만날 기회를 줄 수 없겠느냐고 하면서 거처를 물었다. 메트로 호텔에서 연금 상태에
있다고 했더니 자못 놀라는 기색이었다. 이튿날 아침 이병희 서울분실장이 찾아오더니 “이제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고 했다. “다른 경제인들도 전원 석방되었느냐”고 물었더니 아직 그대로라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 나와 친한 사람들일
뿐 아니라 부정 축재자 1호인
나만 호텔에 있다가 먼저 나가면 후일에 그 동지들을 무슨 면목으로 대하겠는가. 나도 그들과 함께 나가겠다”고
거절했다>(《호암자전》)
朴正熙는 최고회의 법사위원장 李錫濟를
불렀다.
“경제인들은 이제 그만했으면 정신
차렸을 텐데 풀어주지.”
“안 됩니다. 아직 정신 못 차렸습니다.”
“이 사람아, 이제부터 우리가 권력을 잡았으면 국민을 배불리 먹여 살려야 될 것 아닌가.
우리가 以北만도 못한 경제력을 가지고 어떻게 할 작정인가. 그래도 드럼통
두드려서 다른 거라도 만들어 본 사람들이 그 사람들 아닌가. 그만치 정신 차리게 했으면 되었으니 이제부터는
국가의 경제 부흥에 그 사람들이 일 좀 하도록 써먹자.”
이석제는 朴 부의장의 이 말에 반론을
펼 수 없었다. 다음날
이석제는 최고회의 회의실에 석방된 기업인들을 모아 놓고 엄포를 놓았다고 한다. 차고 있던 큼지막한
리볼버 권총을 뽑아들더니 책상 위에 꽝 소리가 날 정도로 내려놓고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나는 여러분들을 석방시키는 일에
반대했습니다. 그런데도
朴 부의장께서 내놓으라고 하니 내놓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원조 물자, 국가 예산으로 또 다시 장난치면 내 다음 세대, 내 후배 군인들 중에서 나 같은 놈들이
나와서 다 쏴죽일 겁니다.”
6월 29일
아침 李秉喆 사장이 묵고 있던 메트로호텔을 찾아온 이병희 정보부 분실장은 기업인들이 전원 석방되었다고 알려주었다. 이병철도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박정희의 유연한 정신세계와 겸손한 자세,
그리고 私心이 적은 태도가 그로 하여금 단기간에 경제의 본질을 배우게 했다.
실천력을 중시하는 박정희는 이론에 치우치는 학자나 신중한 관료들보다는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기업인들과 더 잘
호흡이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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