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December 18, 2012

사람 이야기 (Story of Human)


김일순 교수는 연세대학교 예방의학과 교수, 세브란스 의료시스템 이사장을 지내신 분이시고 현재는 골든 에이즈 포럼의 회장직을 맡고 있으며, "사전의료의향서" 작성 운동을 벌리고 계신다. 아래 글은 인생의 가장 황금기인 70-80세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깨우쳐주는 글이다. 

 

[사람 이야기] 

 잘 죽는 법을 미리 생각하다… 
'골든에이지 포럼'만들고 나서다


김일순 

최보식 선임기자 /조선일보 : 2012.11.26.

65세에 '노인' 꼬리표 붙여 밀어내선 안돼…

이건희·정몽구 회장은 70대다

재산을 자녀에게 미리 나눠주라,

하루 4000보씩 速步로 걸어라,

자녀와 독립된 주거에 살아라

소각로에 들어갈 수의나 棺을 값비싸게 장만하는 게 옳은가…

장례식으로 자신의 위상 과시해

"지금 뭐 때문에 죽는 얘기를 하느냐는 반응도 있다. 하지만 사는 것은 죽음을 전제로 하지 않나."

김일순(75) '골든에이지 포럼' 회장의 말은 힘이 들어가 툭툭 끊어지곤 했다. 요즘 그는 '사전(事前) 장례의향서' 운동을 벌이는 중이다.

―언제 죽을지 알고 작성하나? 다산 정약용은 환갑 때 자신의 묘지명까지 다 써놓고도 14년을 더 살았다.

"내가 모델로 삼고 있는 미국의 스콧 니어링(1883~1983) 100세로 죽기 20년 전에 그런 유서를 썼다. '작업복을 입혀 소나무 판자로 만든 관에 넣어달라. 관에는 치장을 하지 말고 장례식도 하지 말라. 화장 뒤 뼛가루를 나무 아래에 뿌려 달라'. 본인 사후(死後)에 원하는 장례 방식을 미리 작성해보면 죽음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도 갖게 될 것이다."

―유교에서는 상례(喪禮)를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고의 예로 여겼다. 이를 어기면 금수와 다를 바 없다고 했다.

"지금 장례 문화는 상업주의를 따라간 것이다. 곧장 소각로에 들어갈 수의나 관을 지금처럼 값비싸게 장만하는 게 옳은가. 평소 입던 옷으로 송판(松板) 관에 들어가면 왜 안 되나."



▲ 김일순 회장은 “존엄성 있게 죽으려면 생전에 죽음을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명원 기자


―자녀 입장에서는 마지막 가는 길에 인색해서야 되겠나 하는 마음이 있지 않겠나.

"자녀들은 이런 얘기를 할 수 없다. 상대적으로 죽음에 가까운 우리가 합리적으로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작년 한 해 약 25만명이 죽었다. 1인당 평균 장례 비용이 1200만원이다. 이는 1인당 국민소득의 55%를 차지한다. 고령자의 증가로 2035년쯤이면 장례를 한 해 50만건 치르게 된다. 지금처럼 가면 사회가 감당할 수 없다."

연세대 의대 명예교수인 그는 이미 1990년대 후반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의 '풍속'을 바꾸려 한 적이 있었다. 오직 조문만 하고 가도록 했다. 장례식장 안의 음식 대접을 금지했다. 자정이 되면 문을 닫아 상주도 귀가시켰다. 빈소에서 밤새 술을 마시고 화투를 치는 광경이 사라진 것이다.

―당시 조문객으로 몇 번 가보니 뭔가 어색했다.

"빈소에서 왜 술 마시면서 오래 머물러 있어야 하나. 장례가 정말 슬픔의 자리가 아니라, 조문객과 조화(弔花) 숫자로 자신의 사회적 위상을 과시하는 걸로 바뀌었다. 우리의 새로운 실험에 다들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사회에서 '장례식장 수입이 적다'는 지적이 나왔다. 병원을 새로 지으면서 10년 만에 과거로 되돌아갔다."

―장례식은 죽은 자에 대한 조문(弔問)인 한편, 조문객들끼리 모여 음식을 나누는 '잔치'일 수도 있다.

"옛날 마을 공동체에서는 그랬지만, 지금까지도 사람들 간의 교유가 장례식이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잔치'가 아니라 바쁜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이다. 대부분 사회적 관계 때문에 눈도장 찍으러 온 것이 아닌가."

―장차 본인의 장례는 어떻게 치르길 원하나?

"공병우(1906~1995·한글 타자기 개발) 박사는 '내 죽음을 알리지 마라. 가족끼리 장례식을 다 치르고 난 뒤에야 주위에 알려라'고 유언을 남겼다. 나도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

―교수님은 '사전 의료의향서'를 작성해놓아야 한다는 운동도 벌인 적이 있다.

"하늘이 준 내 생명은 끝났다. 생각도 의식도 못 한다. 다만 의학의 기술로 심장과 폐를 움직이게 만든다. 의료 기계로 둘러싼 중환자실에서 내가 그런 상태로 죽음을 맞는다고 생각해보라. 의사는 자기가 가진 기술로 생명을 연장하지 않으면 의사 윤리에 저촉된다. 그런 무의미한 연장 치료를 받는 게 옳은가. 이는 고문이다. 그 과정에서 평생 쓰는 의료비의 40%를 쓴다고 한다. 이를 피하려면 사전에 본인의 의사를 밝혀놓으라는 뜻이다."




―어느 선에서 의료 중단을 해야 할지 알 수 있겠는가?

"더 이상 스스로 생명을 유지할 능력이 없는데도 인공호흡기로 연장하는 것이다. 내가 의사 출신 아닌가. 몸속에 인공호흡기 관을 넣는 고통만 더 줄 뿐이다. 그게 무의미한 연장이고 회복될 가망이 없다는 걸 의사는 안다."

―연명 치료를 중단하면?

"말기 암 환자는 호스피스 병동으로 가고, 그렇지 않은 환자는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일반 입원실로 옮기는 게 맞는다. 환자에게 마지막을 준비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행복하고 존엄성 있게 죽으려면, 생전에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야 한다.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그는 2009년 노년의 사회적 역할과 위상 정립을 위해 '골든에이지 포럼'이라는 민간단체를 만들었다. 노년은 '황금(golden)의 나이'로 표현됐다.

―사람들 대부분은 오래 살고 싶어 하지만, 늙어가는 것은 원치 않는다.

"그렇다."

―본인이 늙었음을 실감한 것은 언제였나?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죽음이 가까웠다고 생각은 하지만, 내가 늙었다고 실감한 적은 별로 없다."

―가령 대학에서 정년퇴임했을 때, '내가 늙었구나' 생각이 안 들었나?

"스스로 그런 생각을 하면 정말 노인이 된다. 이 나이에도 나는 생물학적으로 활동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 명예교수로서 대학원 강의 하나를 아직도 맡고 있다."

―나는 50대인데도 늙음의 느낌을 갖고 있다. 충분히 일을 했으면 물러나는 게 옳고, 계속 앞에서 활동하겠다는 노인을 볼 때 가끔 집착과 욕심을 떠올리게 된다.

"최 선생은 옛날 인식을 그대로 갖고 있는 것 같다. 지금 고령자들은 과거에 비해 몸과 정신에서 훨씬 건강하다. 지금처럼 복잡다단한 사회에서는 경륜과 능력이 필요하다. 옛날에는 16세부터 어른 대접을 받았다. 지금은 25세가 돼도 어른 노릇을 못 한다. 100세 시대의 연령 구조를 보면 나이 오십은 이제 겨우 절반을 지난 것이다."

―교수님처럼 70대가 되면 어떤 기분인가?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어느 연령대가 가장 행복할까' 하는 논문을 발표한 적 있다. 70~80대가 가장 행복한 연령대로 조사됐다. 미국심리학회에서도 똑같은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공부 중압감, 취업, 결혼, 승진 등에 더 이상 시달리지 않고, 시간적으로도 자유로워지기 때문이다. 요즘 내 집사람과도 '지금이 가장 행복한 시기가 아닌가' 하는 대화를 나눈다."

―교수님은 주말마다 제주도에서 지내는 걸로 안다. 이런 여유는 우리 사회에서 아주 드문 사례여서 일반화하기 어렵다.

"10년 전 제주도에 땅을 사서 과수원 농사를 하고 있다. 우리 연령에는 나처럼 노후를 준비한 사람이 많지 않았다. 다들 나이 일흔이면 죽을 줄 알았지 이렇게 오래 살 줄을 몰랐던 것이다."

―우리 현실에서는 노인이 되면 대부분 쓸쓸하고, 소외와 궁핍의 삶을 보낸다.

"쓸쓸하고 비참하다, 부양하지 않으면 못 살아가는 것처럼 해놓은 우리 사회의 인식이 문제다. 고령자가 늘어 미래가 암울하다는 말까지 한다. 나이가 들면 한낱 부양 대상으로만 보려고 한다. 70대이지만 이명박 대통령이나 이건희·정몽구 회장이 어디 무력한 노인인가. 많은 고령자가 점점 더 생산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고령자가 늘면 고령자 산업도 발전한다. 그 안에서 젊은 사람들도 일하게 된다."

―노인 세대는 건강보험과 연금에 부담을 주는 게 사실이다. 통계로는 65세 이상이 건강보험료 30%를 소비하고 있다.

"현재의 노인 기준이 65세라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는 1950년대 인구학자가 지정했다. 그때는 인구의 1~2%였다. 현재는 11%( 500만명). 65세에 '노인' 꼬리표를 붙여 인생의 뒤안길로 밀어내는 격이다. 아직은 너무나 건강한 그 나이가 어떻게 노인인가. 방송 뉴스에서 '60대 노인이 교통사고를 당해 어쩌고…' 리포트를 들으면 거북하다."

―정년 연령을 연장하는 논의도 있다. 그럴 경우 청년 세대의 일자리가 줄어들지 않겠나?

"내 지인 중에 미국에서 활동하는 피부과 교수가 있다. 65세에 병원에서 은퇴한 뒤 재계약을 했다. 지금 79세인데도 놓아주지 않는다. 병원으로서는 그 경륜과 실력을 달리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나이 든 사람의 직종과 젊은 사람의 직종은 다르다. 우리 사회에서 젊은 사람들이 취업 안 되는 것은 바로 위 세대 때문이다. 인구 분포에서 40대가 가장 많다. 이들이 앞을 막고 있어 일시적으로 생긴 현상이다."

―노년에 가장 명심해야 할 점은?

"나이가 들수록 몸을 계속 움직여라. 가족과 사회에 부담을 안 주는 삶을 살아야 한다. 건강을 잃으면 자녀들에게 부담이 되고, 국가 건강보험 제도에도 부담이 된다. 나는 일주일의 절반을 제주도 과수원에서 일한다. 적어도 하루에 4000보씩 속보(速步)로 걸어야 한다. 그것만 해도 병원 방문율이 20~30%씩 떨어진다."

―꼭 속보로 걸어야 하나. 유유자적하게 산책하는 것은?

"50대를 출발선에서 일렬로 줄 세우고 걸어오라고 할 때 늦게 오는 순서부터 죽어간다. 속도가 늦은 사람이 치매에도 많이 걸린다. 숨이 찰 정도로 빨리 걸어야 심장이나 혈액 순환에 좋다. 나는 1분에 120보를 걷는다."

―노년의 삶을 위해서는 자녀에게 미리 재산을 넘기지 말라는 경고도 있더라.

"내 여생에 필요한 재산만 남기고, 미리 정리하는 게 맞는다고 본다. 안 나눠주고 있으면 마당에서 내가 체조를 해도 '저 영감은 죽지도 않나'고 할지 모른다. 자식들 보는 앞에서 체조도 못 한다."

―노후에는 독립 주거를 선택하라고 한다. 자녀 가정에 얹혀살면 굴욕과 냉대를 받을 것이라며.

"자녀가 결혼하면 그 뒤는 내 삶은 내 삶이고 자녀의 삶은 자녀의 것이다. 자녀에게 얹혀사는 노년도 어렵지만, 요즘에는 결혼한 자녀가 들어와서 안 나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자칫 손주를 돌봐줘야 되는 순간 내 삶이 묶인다. 나는 제주도로 옮겨 사니 손주를 봐달라고 할 수가 없다."

젊음도 언젠가 늙음과 만날 것이다. 살아보면 멀리 있는 것 같았는데 늘 먼 시간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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